[리뷰:포테이토 지수 83%]’1947 보스톤’, 암울한 시대 ‘청년 서윤복’의 꿈을 위한 질주
BEST potato(83%)
“우리는 우리 이름으로 못 뛰었으니까 애기들은 자기 조국에서 자기 이름으로 뛰게 해줘야지”
1947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남승룡(배성우)이 손기정(하정우)에게 ‘제2의 손기정’을 만들어 보자며 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도와 달라 말한다. 11년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을 했지만 가슴에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를 달고 시상대에 올라야 했던 일이 원통했던 손기정은, 젊은 마라토너들에게 태극마크를 달아주자는 남승룡의 얘기에 마음이 동한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1947 보스톤’은 광복 이후 손기정 감독과 남승룡 코치, 그리고 서윤복(임시완) 선수가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기까지 여정을 그린다.
영화는 일제에게서 해방된 뒤에도 미군정의 통치로 여전히 혼란하고 궁핍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조국과 꿈을 위해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은 마라토너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조선이 난민국이라는 이유로 보증인과 보증금이 없으면 미국에 입국할 수 없다는 미군정과, 성조기를 달지 않으면 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는 대회 주최 측의 완고한 입장에 맞서, 우여곡절 끝에 일본 괌 하와이를 거쳐 미국에 도착하고, 마침내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뛰게 되는 모습은 실화에 힘입어 생생하게 다가온다. ‘쉬리’ ‘태극기를 휘날리며’ ‘마이 웨이’ 등의 작품을 통해서 비극적 시대를 조명하며 운명에 휘둘리거나 맞서는 개인에게 주목해온 감독의 일관된 관심이 이 영화에 담겨 있다.
더불어 영화에는 각본 없는 드라마인 스포츠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쾌감도 담겨 있다. 서윤복이 선두를 달리다가 갑자기 나타난 관객의 반려견 때문에 넘어져 부상을 당했을 장면에서, 또 1위 자리를 놓고 우승 후보의 선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장면에서는 결말을 아는데도 어쩔 수 없이 손에 땀을 쥐게 된다.
무엇보다 ‘1947 보스톤’의 가장 큰 장점은 서윤복을 연기한 임시완이다. ‘미생’ 속 사회 초년생의 어리숙한 얼굴부터 ‘비상선언’ 속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섬뜩한 얼굴까지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 이 30대 젊은 배우는, 76년 전의 이야기를 하는데도 이질감 하나 없이 동시에 이 영화에서 가장 신선한 얼굴을 보여준다. 그는 실존인물에 도전하면서 체지방 비율을 극도로 낮추는 등 마라토너 서윤복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운동장 100바퀴를 뛰다가 사점에 도달한 순간,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은 너무나 사실적이라 몰입감을 높인다.
영화는 손기정과 남승룡이 스포츠의 힘을 빌려 독립된 조국을 알리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과, 서윤복이 그런 스승과 선배의 도움을 받아서 가슴 속에 품고 있던 꿈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노련한 연출로 균형감 있게 풀어낸다. 세계가 몰랐던 변방의 작은 나라를 주목하게 한 세 스포츠 영웅들의 여정은 뭉클함을 선사한다. 그러나 공동체의 가치보다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고, 꿈보다 현실을 추구하는 요즘 젊은 관객에게 ‘1947 보스톤’이 어떻게 소구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감독 : 강제규 / 출연 : 하정우, 임시완, 배성우, 김상호 외 / 개봉 : 9월27일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장르 : 드라마 / 러닝타임 : 1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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